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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어설픈 시인의 서울살이 (6) 말과 인격

"어이 아줌마, 안주 좀 더 가져와"

어설픈 시인의 서울살이 (6) 말과 인격





[서울톡톡]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그러나 가장 편리한 의사소통 방법은 말(언어)이다. 편리한 의사소통의 방법인 말은 인격을 나타내는 거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말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맺어주는 1차적인 끈도 말로부터 비롯된다. 말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인간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상대방에게 엄청난 상처를 주기도 하고 삶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인격적인 사람은 좋은 말을 사용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말버릇은 저마다 다르다. 좋은 말버릇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하면 아주 좋지 않은 말버릇이 굳어버린 사람들도 있다. 사람마다 다른 말버릇은 기본적인 마음가짐과 오랜 습관의 결과이다. 따라서 인격적으로 성숙한 좋은 말씨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래서 '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도 있다.


말버릇으로 드러나는 사람들의 인격은 교묘하게 위장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강의나 기자회견, 방송에 출연할 때 등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그 사람의 인격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별로 거리낄 것이 없는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자신보다 약하거나 낮은 위치에 있는 상대와의 대화에서는 쉽게 드러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난해 가을 어느 음식점에서 있었던 일이다. 가벼운 칸막이 너머 이웃 자리에 나이 들어 보이는 신사들 네 사람이 저녁을 먹고 있었다. 굳이 엿듣지 않아도 크게 들리는 그들의 대화를 통해서 그들이 모두 사회적으로 상당한 지위에 있었거나 현직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교수로 불렸고 다른 한 사람은 변호사라 불리었다. 그런데 그들이 음식과 술을 들다가 초인종을 눌러 종업원을 부른 후 그들 중 한 사람이 거만한 목소리로 지시를 했다.


"어이~ 아줌마, 여기 술 한 병 하고 안주 좀 더 가져와!"


"아~ 네, 손님, 바로 가져오겠습니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40대쯤으로 보이는 종업원 아주머니는 두 손을 모으고 깊게 허리를 굽혀 인사한 후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주문한 술과 안주를 공손하게 상에 올렸다.


"아참, 아줌마, 여기 이 안주 맛이 좋구먼, 이것도 한 접시 더 가져와!"


"그리고 여기 이것도 한 접시 더 가져와요?"


이번엔 다른 사람이 지시를 했다. 두 사람 다 하나같이 반말이었다. 세 번째 말한 사람만 '가져와요'라는 최소한의 경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모두 교육수준도 높고 사회적 지위도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말버릇이 고약했다. 왜 그랬을까?


"저 친구들 말버릇이 정말 고약하구먼, 마구 반말이네, 음식점 종업원을 자신이 부리는 하인으로 생각하는 것 아냐?"


"음식점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무시하는 거겠지. 자신이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하여 저 따위로 말하는 걸 보면 많이 배우고 지식은 있는지 몰라도 인격적으로는 형편없는 사람들이구먼."


일행들 몇 사람이 눈살을 찌푸리며 소곤소곤 하는 말이었다. 정말 그런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이가 어린 사람도 아니고 40대로 보이는 여성에게 어찌 반말로 지시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연전에 어느 백화점 고급의류 판매원에게서 들은 말이 생각났다.



"말도 마세요. 더럽고 치사해서 당장 때려치우고 싶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참고 일하는 거예요. 반말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심한 욕도 먹는 걸요. 우리 같은 판매원들은 사람 대접도 안 해 주는 걸요. 많이 배운 것이나 사회적 지위는 인격하곤 전혀 상관없는 것 같아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특히 음식점이나 백화점, 대형 할인점 등 유통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피해의식이 컸다. 손님이라는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비인격적인 말버릇 때문이었다. 실제로 대형 유통업체 매장이나 음식점에서는 종업원들에게 반말하는 나이든 사람들을 흔히 보게 된다.


"꼭 연세 드신 분들만 반말을 하는 건 아니에요. 저랑 같은 또래의 손님들 중에도 가끔 그런분들이 있는 걸요. 당연히 기분 나쁘죠. 무시당하는 것 같고, 제 자신이 서글프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어쩌겠어요? 손님인데... 대들기라도 했다간 당장 쫓겨날 건데요. 그래도 가끔씩 좋은 손님들도 오신답니다. 말씀도 점잖게 하시고... 그런 손님들에겐 저절로 잘해드리고 싶고, 존경심도 생기지요."


나이든 신사들로부터 반말 지시를 들었던 40대 여성 종업원의 말이다. 정말 그럴 것이다. 손님이라는 이유로 반말로 하대하는 그들이 어찌 기분 나쁘지 않겠는가? 반대로 공손한 말씨를 사용하는 손님들에게 친근감과 존경심이 생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여성종업원들도 가정에 돌아가면 누군가의 귀한 딸이며 한 남자의 아내이고 자녀들의 어머니다. 음식점이나 유통업체의 종업원이라고 해서 무시당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재산, 나이에 따른 잘못된 권위의식으로 상대적 약자를 무시하는 말버릇은 너무나 비인격적이다. 더구나 상대가 그런 부적절한 말투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면 이건 언어폭력이다. 그래서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라고 하는 것이다. 말을 함부로 하지 말고 조심해야 한다. 더구나 상대가 자신보다 약하거나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공손한 말씨를 사용해야 할 것이다.


이승철 시민리포터는 시인이다. 스스로 '어설픈 시인'이라며 괴테 흉내도 내보고, 소월 흉내도 내보지만 "나의 시는 항상 어설프다. 불후의 명작을 쓰겠다는 욕심은 처음부터 없었고 그저, 더불어 공감하는 보통 사람들과 같이 숨 쉬고 나누는 것을 만족할 뿐"이라고 한다. 이 어설픈 시인이 서울살이를 하며 보고 느낀 삶의 다양한 모습, 역사와 전통 등을 시인 특유의 문체로 써내려 간다.


출처 : 서울톡톡 http://inews.seoul.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