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치설`이 `까치설`로~
어설픈 시인의 서울살이 (5) 전통명절 설
[서울톡톡] 떠올리지 마라, 그 그립고 슬픈 기억을
눈보라치던 섣달 그믐날
산과 들, 마을과 마음까지 온통 새하얀 눈 세상
통통통 떡 방앗간에는 인절미와 가래떡이 줄줄 흘러내리고
무명 솜저고리 검정 통치마
떡 광주리 머리에 이고 눈발 속을 훨훨 날던 어머니
서울 자식들 기다리며 눈 빠지던 동구 밖엔
열두 시간 기차를 타고 매캐한 연탄 냄새를 안은 채
어둔 밤 흰 눈 속을 뚫고 달덩이처럼 달려온 그리운 얼굴들
한 달 내내 허기진 배 움켜잡고 쪄내는 시루떡
녹두전, 홍어찜에 영광굴비가 익어갈 때
저승 갔다던 할머니가 군침 흘리며 사립문 밀고 들어서던 밤
엉덩이 굽는 아랫목엔 가난 시름도 거덜 났다.
흰 눈썹의 산신령이 될까봐 억지로 치켜뜨는 눈자위 위로
또 한 해가 가고
때때옷 고샅길에도 햇볕이 쨍하다.
코 묻은 세뱃돈에 주근깨투성이 얼굴에도
해맑은 웃음꽃이 피던 시절
띄워 올린 방패연에 눈 시렸던 먼 옛날
슬프도록 그리운 추억 속의 설이여.
-이승철의 시 '설날의 추억'
2월10일은 우리 전통명절인 설날이다. 설은 추석과 함께 우리민족이 오랜 옛날부터 가장 큰 명절로 여겼다. 설이 가까워지면 어머니들은 차례를 지내고 가족 이웃들과 나눠먹을 음식을 만들고, 아이들의 설빔 옷을 만들거나 구입하는 등 분주했다. 가난한 살림살이가 힘겨워도 외면할 수 없는 명절이 설이었다. 아이들은 맛있는 음식에 때때옷 입을 생각에 마냥 즐겁기만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설이 되면 외지에 나가있던 가족들도 대부분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나누어줄 선물을 한 아름씩 안고 고향집을 찾았다.
설날에는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 등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렸다. 아이들은 부모님이 마련해준 때때옷을 차려 입고 모처럼 맛있는 음식에 세뱃돈까지 생겨 여간 신나는 날이 아니었다. 시골마을에서는 아이들이 친척어른들은 물론 마을어른들을 모두 찾아다니며 하루 종일 세배를 다니기도 했다. 세배를 받은 어른들은 과자나 과일을 나눠주거나 세뱃돈을 몇 푼씩 집어주었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여자아이들은 곱고 예쁜 색동저고리 때때옷을 차려입고 즐겁게 설날 동요를 부르며 고무줄놀이를 즐겼다. 까치설날은 설의 전날인 섣달 그믐날을 일컫는 말로 작은설이라고도 한다. 옛날에는 작은설을 '아치설' 또는 '아찬설'이라고도 했는데 작다는 뜻의 아치가 음이 비슷한 까치로 바뀌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까치설인 음력 섣달그믐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고 하여 아이들은 잠을 자지 않으려고 억지로 밤을 지새우다가 새벽녘에 잠들곤 했다.
우리 전통명절 '설날'은 음력 정월 초하루를 말하는데 '설'이라는 말의 어원은 '사린다' 또는 '사간다'는 옛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삼가다', '근신하다'의 의미를 가졌다고 한다. 설날은 그냥 기쁘게 음식을 나눠먹고 즐기는 명절이 아니라 1년 내내 무사하게 잘 지낼 수 있도록 조심하고 기원하는 날로 여겼던 것이다. 즉 한해를 시작하는 날인만큼 조심스럽게 첫발을 내딛는 뜻 깊은 날로 받아드렸던 셈이다.
또 설날부터 정월 대보름까지의 15일 간은 정초라 하여 특별한 풍습이 행해졌다. 설날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한 후에는 윷놀이나 널뛰기, 연날리기 등의 민속놀이를 하며 설날을 즐겼다. 우리 고전 '동국세시기'에는 1년 동안 머리를 빗질할 때 빠진 머리카락을 빗상자에 모아 두었다가 설날 해질 무렵에 태우면서 나쁜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기원하는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전통 큰 명절인 설은 일제 강점기와 광복 이후 40여 년 동안은 공식적으로는 명절로 대접받지 못하고 홀대받기도 했다. 이 시기에는 양력 1월 1일을 신정이라 하여 3일 동안 공휴일로 지정하고 명절로 지내도록 하는 한편, 설날은 구정이라 하여 2중과세 방지라는 명목으로 명절로 지내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정부의 지침에 따르지 않고 음력설에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하는 고유풍습을 지켰다. 우리 고유명절 설에 대한 전통가치를 일제의 지시나 정부의 지침보다 우선했기 때문이다. 결국 국민들의 의식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우리전통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공론화되어 1985년부터 1988년까지는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음력 1월 1일 하루를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그리고 1989년에 드디어 음력설을 '설날'로 하고, 섣달그믐날부터 음력 1월 2일까지 3일 간을 공휴일로 지정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우리 전통명절 '설'이 겪어온 지난세월의 수난이었던 셈이다.
전통을 지키려는 국민들의 의지로 꿋꿋이 지켜온 우리전통 고유명절인 '설' 「서울톡톡」 가족 여러분과 독자여러분, 설날 복 많이 받으시고, 가족, 친지, 이웃들과 더불어 즐겁고 행복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 |
출처 : 서울톡톡 http://inews.seoul.go.kr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설픈 시인의 서울살이 (6) 말과 인격 (0) | 2013.10.12 |
---|---|
어설픈 시인의 서울살이 (4) 지하철 매너 1 (0) | 2013.10.12 |
어설픈 시인의 서울살이 (3) 이분법적 흑백논리 (0) | 2013.1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