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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어설픈 시인의 서울살이 (4) 지하철 매너 1

젊은 사람은 늘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

어설픈 시인의 서울살이 (4) 지하철 매너 1





"어르신! 저는 괜찮습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요? 너무 힘들어 보이는구먼, 그냥 앉아요"


"아무리 그래도 제가 어떻게~~"


지하철 안에서 작은 승강이가 벌어졌다. 자리 양보 때문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노인이 젊은이의 어깨를 붙잡아 억지로 자리에 앉혔다. 자리를 양보하고 양보 받는 사람이 너무 뜻밖이었다. 자리를 양보한 사람은 6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노인이었고, 자리를 양보 받은 사람은 30세 전후로 보이는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퇴근시간 무렵 지하철 4호선에서 있었던 일이다.


퇴근시간 지하철 안은 매우 붐볐다. 충무로역에서 당고개행 열차에 젊은이 한 사람이 승차했다. 젊은이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좌석 앞에 있는 손잡이를 붙잡고 섰다. 그런데 그렇게 서있던 젊은이가 한 정거장도 가기 전에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금방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손잡이에 매달리듯 몹시 지치고 힘들어 하는 모습이었다.


마침 그 젊은이 바로 앞에 앉아 있다가 그 모습을 바라본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노인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 젊은이에게 자리에 앉도록 양보하는 과정에서 작은 승강이가 벌어진 것이다. 노인에게서 자리를 양보 받아 몹시 어색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은 젊은이는 너무 피곤했는지 앉자마자 곧 잠이 들었다. 참으로 보기 드문 아름답고 정겨운 모습이었다.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 이용 중에 젊은 사람이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은 우리 전통 경로효친 사상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문화다. 그런데 지하철을 자주 이용하다 보면 노인들의 억지와 무례가 눈살을 찌푸리게 할 때도 더러 있다. 언젠가는 자리를 양보 받은 노인이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 없이 자리에 않는 것을 보았다. 또 지난 가을에는 피로의 기색이 전혀 없는 건장한 노인이 일반석에 앉아있는 젊은 여성들에게 '버르장머리 없이 노인이 앞에 서있는데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며 호통을 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노인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20대 초반의 새파랗게 젊은 사람들이 걷기가 힘들어 비틀거리며 다가온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려고 외면하거나 딴청을 부리는 모습도 가끔씩 눈에 띈다. 앉을 자리를 양보하는 우리 전통 미풍양속이 잘 못 이해되거나 퇴색해가는 안타까운 모습들이다. 그런데 며칠 전 지하철 4호선에서 젊은이에게 자리를 양보한 노인의 모습은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진짜 멋진 노인이었다.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은 다른 나라에서는 그리 쉽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야말로 우리나라 특유의 전통이고 계승해야할 미풍양속인 것이다. 그러나 위의 나쁜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자리양보를 당연한 일로 받아드리는 노인이나, 자리 양보를 강요하는 노인, 그리고 건강하고 젊은 청년이 몸이 불편한 노인을 외면하는 태도는 결코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아름다운 우리 전통문화와 미풍양속을 해치는 염치없고 미숙한 행동들이다.


자리 양보와 같은 아름다운 문화와 전통의 계승발전은 법률로 규제하거나 강제해서 될 일이 아니다. 노인을 공경하는 마음, 임산부나 몸이 불편하고 약한 사람에 대한 배려, 그리고 양보하는 사람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갖고 인사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젊은 사람들이라고해서 모두 항상 힘이 넘치고 건강하기만 할 수는 없다. 젊은이들도 때론 쓰러질 듯 피곤하고 힘든 때가 왜 없겠는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항상 젊은이들에게 양보받기만 하고, 더구나 강요까지 한다는 것은 너무나 염치없는 행동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오히려 더 겸손하고 젊은이들에 대한 배려를 해야 젊은이들로부터 존경과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4호선에서 젊은이에게 자리를 양보한 노인처럼 말이다. 세대 간의 갈등을 줄이고 공경하고 사랑하는 경로효친 전통문화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지하철에서 작은 매너부터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이승철 시민리포터는 시인이다. 스스로 '어설픈 시인'이라며 괴테 흉내도 내보고, 소월 흉내도 내보지만 "나의 시는 항상 어설프다. 불후의 명작을 쓰겠다는 욕심은 처음부터 없었고 그저, 더불어 공감하는 보통 사람들과 같이 숨 쉬고 나누는 것을 만족할 뿐"이라고 한다. 이 어설픈 시인이 서울살이를 하며 보고 느낀 삶의 다양한 모습, 역사와 전통 등을 시인 특유의 문체로 써내려 간다.



출처 : 서울톡톡 http://inews.seoul.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