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

어설픈 시인의 서울살이 (24) 14번째 절기 처서

더위야 물렀거라! 처서 납신다

어설픈 시인의 서울살이 (24) 14번째 절기 처서






[서울톡톡] "요즘은 햇볕이 따가워도 그늘에 들면 바람결이 많이 시원해진 것 같아"


"그럼, 낼모레가 처서인데 제깟 더위인들 안 꺾일 수 있겠어? 요즘은 밤에 귀뚜라미 소리도 많이 들리던 걸, 아직도 조금 무덥긴 하지만 가을이 바짝 다가온 느낌이야"


엊그제 함께 길을 걷던 일행들이 나눈 이야기다. 머리가 벗겨질 것 같은 뜨거운 태양빛에 낮 기온이 여전히 30도를 웃돌고 있지만 그래도 조금 달라진 것이 있었다. 일행들 말처럼 그늘에 들면 바람결이 정말 시원해진 것이다. 더구나 아침저녁으론 더욱 선선해진 느낌이 든다. 


8월 23일(금)은 24절기 중 14번째 절기인 처서다. 처서(處暑)는 가을에 들어선다는 입추와 이슬이 내린다는 백로 사이에 있는 절기로, 더위가 그친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절기는 태양이 황경 150도에 이른 시점으로 음력으로는 7월 15일 무렵에 드는 절기다.



옛날부터 처서 무렵이 되면 논둑이나 산소의 풀을 깎아 벌초를 했다. 이때쯤이면 나무나 풀도 성장을 멈추고 더 자라지 않기 때문이다. 또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 는 속담이 있는데, 더위가 한풀 꺾이면서 모기의 극성도 시들해진다는 것이다. 농부들은 봄여름에 사용했던 쟁기와 호미를 깨끗이 씻어 갈무리하고, 가을 추수 전까지 비교적 한가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정칠월 건들팔월'이란 말도 있었다. 특별히 바쁘거나 힘들지 않게 어정거리면서 칠월을 보내고, 한가하게 건들거리면서 팔월을 보낸다는 말이다. 모내기나 보리수확, 김매기 등 다른 때보다 한가한 농사철이라는 것을 재미있게 표현한 말이다.


처서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는 말이 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다는 신호처럼 밤이 되면 귀뚜라미 소리가 많이 들리기 시작하고 해맑은 하늘에 두둥실 떠오른 뭉게구름이 아름다운 시기다. 밭에서는 옥수수가 영글어가고, 고추가 붉게 익어가는 때여서 고추를 따서 뜨거운 햇볕에 말리기에 좋은 때이기도 하다.


또 처서 무렵의 날씨는 한해 농사의 풍흉을 가늠해보는 매우 중요한 시기다. 비록 절기상으로는 가을이지만 햇살은 여전히 뜨거워야 하고 날씨는 쾌청해야 한다. 요즘 서울 근교의 농촌에 나가보면 벼 이삭이 한창 올라오고 있다, 이른 벼는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바로 이런 시기에 맑고 강한 햇살을 받아야 벼 포기와 이삭이 성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처서에 내리는 비를 '처서비'라고 한다. 그리고 처서에 비가 내리면 쌀독의 곡식이 줄어든다는 말이 있다. 또 '처서에 비가 내리면 십리에 천석 감한다'는 말도 있다. 처서에 비가 오면 그동안 잘 자랐던 벼들도 흉작을 면치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 무렵에 비가 내리면 올라오던 벼이삭에 빗물이 들어가 제대로 자라지 못해 썩기 때문이다. 바로 요즘인 처서 무렵의 날씨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농민들의 체험적인 삶의 무게가 담긴 말들이다.


이렇게 달라지는 자연의 미묘한 변화를 옛 문헌 '고려사' 50권 지4역 선명력 상에는 처서절기의 15일 동안을 5일씩 3등분하여 이렇게 표현했다. 첫 5일 동안인 초후에는 매가 새를 잡아 제를 지내고, 둘째 5일 동안인 차후에는 천지에 가을 기운이 돌고, 셋째 5일간인 말후에는 곡식이 익어간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시기에는 밤과 배, 사과 등 과일들도 익어가고 조와 수수 등 밭곡식들도 알알이 영글어 간다.


그런가 하면 처서절기는 그동안 무더위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삶의 여유와 낭만을 찾아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아침 저녁으로 느껴지는 선선함과 나무 그늘 밑 시원한 바람. 이제 조급했던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느긋한 마음을 가져보자.  


이승철 시민기자는 시인이다. 스스로 '어설픈 시인'이라며 괴테 흉내도 내보고, 소월 흉내도 내보지만 "나의 시는 항상 어설프다. 불후의 명작을 쓰겠다는 욕심은 처음부터 없었고, 그저 더불어 공감하는 보통 사람들과 같이 숨쉬고 나누는 것을 만족할 뿐"이라고 한다. 이 어설픈 시인이 서울살이를 하며 보고 느낀 삶의 다양한 모습, 역사와 전통 등을 시인 특유의 문체로 써내려 간다.


출처 : 서울톡톡 http://inews.seoul.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