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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어설픈 시인의 서울살이 (23) 나무이야기 4

냄새는 고약해도 참 좋은 나무입니다

어설픈 시인의 서울살이 (23) 나무이야기 4






[서울톡톡]


"어! 이게 무슨 냄새지? 꽃향기야, 구린내야?"


엊그제 함께 걷던 일행들이 발걸음을 멈추며 하는 말이다. 강북구 북서울 꿈의숲 공원길에서다. 주변을 둘러보니 오른편 언덕에 꽃이 흐드러졌다. 누리장나무 꽃이다. 꽃나무 이름을 알려주자 "그런 나무가 있었느냐"고 반문한다. 일행들은 처음 듣는 나무 이름이라고 한다.


7월 말경부터 꽃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하더니 요즘 한창이다. 꽃은 암·수가 함께 있는 양성화로 엷은 홍색을 띤다. 끝부분이 5개로 갈라져 있으며 수술이 유난히 튀어나와 있다. 잎은 난형으로 마주난다. 잎의 가장자리는 밋밋하거나 큰 톱니가 있고, 뒷면 액상에는 털이 있다.



마편초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관목인 누리장나무는 잎이나 줄기가 약용으로 쓰일 뿐만 아니라 봄철 어린잎은 나물로 먹기고 한다. 나무의 키가 크게 자라지 않아 보통 2~3미터 정도로 사람의 눈높이에 딱 맞는다. 키는 크지 않지만 가지들이 옆으로 넓게 퍼지는 형태로 군락을 이룬다.


누리장나무는 잎과 줄기에서 누린내가 난다하여 누리장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졌지만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 독특한 냄새 때문에 취오동 또는 향취나무라고도 불리며, 전라도 지방에서는 피나무, 이아리나무라고도 한다. 경상도에서는 누룬나무, 깨타리나무라고도 하며, 강원도에서는 구린내나무라고 불린다. 또 노나무나 저나무, 개똥나무라고도 불리며, 씻지 않은 개 냄새가 난다하여 개나무, 약명으로는 해주상산이라고도 부른다. 무려 13개의 이름을 가진 나무다.


누리장나무가 독특한 향기를 갖게 된 이유에 대해 슬픈 전설이 전해져온다. 옛날 어느 고을에 백정이 살고 있었다. 백정에게 20대 중반의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비록 사회적으로는 천대를 받는 신분이었지만 잘 생기고 똑똑한 청년이었다.


청년은 어느 날 이웃마을 잔치집 일을 거들어주러 갔다가 양가집 처녀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렸다. 총각의 가슴앓이는 깊어만 갔고 그리움을 참지 못해 가끔씩 처녀의 집 근처를 배회했다. 멀리서나마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처녀의 집 근처를 맴도는 총각이 있다는 소문이 마을에 퍼지게 되었고, 처녀의 부모가 불같이 노하여 지방 관가에 고발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총각은 관가에 끌려가 심한 매질을 당했다.


총각은 모진 매를 맞고 아버지의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담 너머로 밖을 내다보던 처녀와 눈길이 마주쳤다. 처녀의 연민어린 눈길을 바라본 총각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날 밤, 총각은 슬픈 사랑을 가슴에 안고 죽고 말았다. 백정 부부는 자식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시신을 처녀가 사는 이웃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산자락 길가에 묻어주었다.


그로부터 1년 후, 처녀는 친척집에 다녀오는 길에 총각의 무덤이 있는 길을 지나게 되었다. 처녀가 무덤 앞을 지날 때, 갑자기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함께 간 동생이 아무리 끌어도 발걸음을 떼어놓지 못하고 무덤 곁에 주저앉아 버리는 것이었다.


놀란 동생은 집으로 달려가 부모님과 이웃사람들을 데리고 나왔지만 처녀는 총각의 무덤 앞에서 이미 죽어있었다. 처녀의 부모는 백정 부부와 의논하여 처녀의 시신을 총각의 무덤에 합장하여 주었다. 이듬해 봄, 그들의 무덤 위에서 나무 한 그루가 자라나 꽃을 피웠다. 사람들은 그 나무에서 누린내가 난다고 하여 누리장나무 또는 누리개나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비록 독특한 향기를 지닌 나무이지만 짙푸른 숲속 꽃을 피워내는 모습은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총각의 순수한 사랑처럼 말이다.


이승철 시민기자는 시인이다. 스스로 '어설픈 시인'이라며 괴테 흉내도 내보고, 소월 흉내도 내보지만 "나의 시는 항상 어설프다. 불후의 명작을 쓰겠다는 욕심은 처음부터 없었고 그저, 더불어 공감하는 보통 사람들과 같이 숨 쉬고 나누는 것을 만족할 뿐"이라고 한다. 이 어설픈 시인이 서울살이를 하며 보고 느낀 삶의 다양한 모습, 역사와 전통 등을 시인 특유의 문체로 써내려 간다.


출처 : 서울톡톡 http://inews.seoul.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