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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어설픈 시인의 서울살이 (12) 노인들의 재혼문제

악처 하나가 열 효자보다 낫다는데…

어설픈 시인의 서울살이 (12) 노인들의 재혼문제





[서울톡톡] 지난 겨울 우연한 기회에 홀로 사는 세 분의 노인들과 상담을 했다. 두 분은 남성, 한 분은 여성이었는데 모두 재혼문제 때문이었다. 세 분의 노인들 모두 재혼하여 함께 살고 싶은 상대가 있는데, 자녀들의 반대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는 하소연이었다.


노년의 외로움을 몰라주는 자식들


올해 73세인 김기섭(가명) 노인은 5년 전에 부인이 암으로 사망했다. 자녀는 아들만 둘인데 모두 결혼하여 따로 살고 있었다. 부인과 단란하게 살던 김노인은 갑자기 외톨이가 되고 말았다. 부인이 암 투병을 하며 고통으로 신음할 때는 옆에서 지켜보기가 안타까워 차라리 빨리 세상을 떠나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도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부인이 세상을 떠나고 혼자 덩그렇게 남고 보니 부인의 빈자리가 그렇게 클 수가 없었다. 외로움을 견딜 수 없었다. 가끔씩 들르는 아들 며느리들과 손자손녀들은 김노인의 외로움을 달래는데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악처 하나가 열 효자보다 낫다'는 옛말은 사실이었다.


젊은 시절의 직장동료와 학교 동창생 등 친구들은 많았지만 친구들은 그냥 친구일 뿐, 아내의 빈자리를 메워줄 수 있는 친구는 없었다. 김노인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친구의 권유로 집에서 가까운 노인복지관에 나가 취미생활에 몰두했다. 그러나 밤에 집에 돌아오면 어둡고 텅 빈 집안이 김노인을 못 견디게 했다. 그렇게 2년여가 지난 작년 봄, 김노인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다. 나이가 두 살 아래인 홀로 사는 할머니였다. 할머니 역시 결혼하여 따로 사는 두 아들과 딸이 있었다. 두 노인은 복지관에서 자연스럽게 자주 만났다. 만나서 차와 음식을 나누기도 하고 함께 여행도 하며,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는 마음도 생겼고 애틋한 정도 깊어갔다.


1년여가 지나는 동안 김노인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함께 살며 서로 위로하고 외로움에서도 벗어나고 싶었다. 할머니는 처음엔 망설였지만 곧 동의했다. 두 노인은 각각 자녀들에게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고 이해를 구하기로 했다. 그런데 김노인의 두 아들은 펄쩍 뛰었다. 며느리들도 마찬가지였다. 70넘은 노인이 웬 재혼이냐는 것이었다. 암으로 고통 받다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벌써 잊었느냐고도 했다. 어머니에 대한 배신이라며 절대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할머니의 자녀들도 반대했다. 특히 두 아들의 반대가 심했다. 친척과 친지, 이웃들에게 창피하다는 것이었다. 다행이 맏이인 딸은 어머니를 이해해 주었다. 결국 딸의 설득으로 두 아들도 어머니의 재혼에 동의하게 되었다.


그러나 김노인의 두 아들은 막무가내였다. 아버지의 재혼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런 다툼 속에서 김노인이 알아차린 것이 있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단독주택 한 채, 바로 그 집을 재혼한 아내에게 넘겨줄까 봐 반대하는 것이었다. 두 아들이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가 재산상속문제 때문이었던 것이다. 김노인은 아들들이 결혼하여 분가할 때 자립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 만큼 재산을 나누어 주었었다. 그런데 아들들이 아버지의 재산상속에 눈독을 들이고 재혼을 반대하다니, 아들들에 대한 배신감과 괘씸한 생각에 김노인은 아들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재혼을 강행했다. 할머니와 동거를 시작함과 동시에 혼인신고를 해버린 것이다. 그러자 아들들은 집에 찾아와 아버지와 할머니에게 폭언을 퍼부으며 행패를 부리고 돌아갔다. 아버지와 인연을 끊겠다는 막말까지 하는 것이었다. 아들들은 벌써 2년 가까이 찾아오지도 않을 뿐 아니라 전화 연락 한 번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재산상속문제와 잘못된 편견이 노인들의 재혼을 가로막는 장애물


또 다른 70대 중반 노인도 사정은 비슷했다. 역시 아버지가 소유한 재산을 재혼한 부인에게 빼앗길까봐 자녀들의 반대가 극심하다는 것이었다. 교제하는 할머니와는 재혼을 약속했지만 자녀들의 반대에 부딪쳐 가슴앓이만 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올해 69세인 양씨 할머니의 사연도 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할머니는 15년 전에 남편과 사별했다. 위로 딸 둘에 아들 하나를 둔 할머니는 어렵게 고생하며 자식들을 교육시켰다. 자녀들은 다행히 말썽부리지 않고 곱게 자라 두 딸이 먼저 출가하고, 작년에 아들까지 결혼하여 분가했다.


자녀들이 모두 결혼하여 분가하자 할머니는 한 시름 놓았다며 모처럼 여유로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동안 자녀들 뒷바라지에 앞만 보고 달려온 할머니의 가슴이 뻥 뚫린 듯 허전했다. 친구 하나가 외로워서 그런 거라며 자신의 오빠를 소개해 주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친구의 소개로 올해 72세인 친구의 오빠를 만나게 되었다. 친구의 오빠도 3년 전에 부인과 사별하고 외롭게 살고 있는 처지였다. 두 사람은 몇 번 만나는 동안 서로 깊은 호감을 갖게 되었다. 할머니는 참으로 오랜만에 '사랑'을 느꼈노라고 했다. 두 사람은 재혼하기로 합의했다.


두 노인의 재혼추진은 오빠를 소개한 친구가 중간에서 나섰다. 남자 노인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재혼을 환영했다. 자신들이 정성껏 모시지도 못하는데 옆에서 새어머니가 함께 하신다면 참으로 고마운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할머니의 자녀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역시 친척들이나 주변 사람들보기가 창피하다는 것이었다. 중매에 나섰던 친구 할머니가 "어머니가 모처럼 할아버지를 만나 사랑을 느꼈다더라."고 할머니의 속마음을 전해주었다. 그러자 자녀들은 "나이가 몇인데 그 나이에 사랑은 무슨 사랑?" 이냐며 펄쩍 뛰더라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어머니를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자녀들이 몹시 섭섭하다고 했다. 그렇다고 자녀들에게 당당하고 떳떳하게 자기주장을 할 수 없어 속만 태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 어느 텔레비전 재혼 프로그램에서는 아들과 며느리가 홀로 사는 60대 초반의 어머니를 모시고 나왔다. 또 다른 20대 딸은 이혼한 후 홀로 사는 40대 후반의 어머니를 모시고 나왔다. 그들을 보면서 세상이 많이 변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홀로 사는 어머니나 아버지의 재혼을 가로막는 자녀들이 아직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노인들의 재혼을 가로막는 요인은 남성노인들의 경우에는 재산상속문제가, 여성노인들의 경우에는 어머니의 재혼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편견과 자녀들의 자존심이 문제였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아버지의 재산은 왜 꼭 자녀에게만 상속되어야 하는가. 열심히 살아서 남긴 유산은 가난한 사람들이나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아름답게 쓰이는 새로운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자녀들도 부모의 유산에 연연하지 말고 스스로 독립하여 자신의 앞길을 개척해 나가는 자립의지를 키워야 진정한 성공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노인들도 사랑을 하고 싶고 사랑할 줄 안다. 몸이 늙었다고 해서 마음까지 늙은 것은 아니다. 노년을 홀로 외롭게 사는 노인들의 재혼문제는 어쩌면 자녀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문제가 아닐까?


이승철 시민리포터는 시인이다. 스스로 '어설픈 시인'이라며 괴테 흉내도 내보고, 소월 흉내도 내보지만 "나의 시는 항상 어설프다. 불후의 명작을 쓰겠다는 욕심은 처음부터 없었고 그저, 더불어 공감하는 보통 사람들과 같이 숨 쉬고 나누는 것을 만족할 뿐"이라고 한다. 이 어설픈 시인이 서울살이를 하며 보고 느낀 삶의 다양한 모습, 역사와 전통 등을 시인 특유의 문체로 써내려 간다.

출처 : 서울톡톡 http://inews.seoul.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