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어설픈 시인의 서울살이 (3) 이분법적 흑백논리

운나 2013. 10. 12. 10:31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어설픈 시인의 서울살이 (3) 이분법적 흑백논리





시민리포터 중 시인이 있다. 스스로 '어설픈 시인'이라며 괴테 흉내도 내보고, 소월 흉내도 내보지만 "나의 시는 항상 어설프다. 불후의 명작을 쓰겠다는 욕심은 처음부터 없었고 그저, 더불어 공감하는 보통 사람들과 같이 숨 쉬고 나누는 것을 만족할 뿐"이라고 한다. 이 어설픈 시인이 서울살이를 하며 보고 느낀 삶의 다양한 모습, 역사와 전통 등을 시인 특유의 문체로 써내려 간다.


[서울톡톡] "요즘 쥐뿔도 모르는 좌빨들이 너무 설친다니까, 나라가 어떻게 되려는지?"


"도대체 수구꼴통들 때문에 한 발짝도 나갈 수 없고 되는 일이 없단 말이야."


지난 연말에 실시된 대선기간 중 흔히 듣던 말이다. 듣기 거북할 정도로 인신공격적인 심한 표현도 많았다. 물론 끼리끼리 모인 모임의 자리나 음식점 같은 곳에서도 쉽게 들을 수 있었던 말들이다. 선거가 국민 모두의 축제가 되지 못하고 갈등과 적대감이 팽배한 싸움 양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보수성향의 사람들과 진보성향의 사람들이 상대방을 헐뜯거나 비난하는 이런 말들은 조금 수그러들긴 했지만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럼 보수성향의 사람들이 못마땅해 하며 '좌빨'이라 비난하는 진보는 과연 어떤 정치적 성향을 말하는 것일까? 진보의 사전적 의미는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그럼 진보진영에서 '수구꼴통'이라 욕하는 보수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반대하고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며 유지하려는 성향'을 말한다.


진보와 보수는 역사와 현실, 그리고 미래를 보는 시각과 추구하는 방법이 다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 과연 어떤 쪽이 정답일까? 어느 쪽이 선이고 어느 쪽이 악일까? 한 마디로 정답은 없다. 어느 한쪽도 완전한 선이나 완전한 악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류의 오랜 역사는 보수와 진보라는 양쪽 바퀴가 균형 있게 함께 굴러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보수의 전통적인 가치가 유지되지 않으면 그 사회는 뿌리부터 흔들린다. 그러나 변화를 추구하는 진보적인 가치가 인정받지 못하면 역사는 발전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에 머문다. 결코 어느 한쪽도 폐기하거나 낙인을 찍어 몰아내야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상호 존중하고 이해하며 협력해야 할 상대인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사회 구성원들이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거나 포용하지 못하고, 적대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현상은 이분법적 흑백논리가 지배하는 사회구조에서 비롯된 것으로 남북분단과 냉전 이데올로기, 6,25 한국전쟁으로 인한 동족상잔의 비극에서 기인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동지가 아니면 적, 백이 아니면 흑이라고 단순화시켜 단정 짓는 것이다. '나는 옳다, 그러므로 나와 다른 너는 옳지 못하다. 따라서 너는 나의 적이다' 이런 식으로 단순하게 규정지어 버리는 것이다.


어디 보수와 진보라는 정치사상의 문제뿐이겠는가?. 나와 다른 사람과 생각을 가진 사람에 대한 적대감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매우 심각한 병폐다. 지구상의 자연 생태계가 그렇듯 사람들은 모두 다르다. 외모가 다른 것처럼 생각이나 추구하는 지향점이 다른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런 다양함을 인정하지 않고 이분법으로 단순화시켜버리는 오류는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가.


"내 의견에 왜 반대하는 거야? 내게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거지? 나쁜 놈!"


어느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회원 한 사람이 자신이 제안한 의견에 반대하고 다른 의견을 제시한 다른 사람을 나쁜 감정 때문이라며 싸움을 시작했다. 자신이 옳다고 제안한 의견에 반대한 상대를 나쁜 사람으로 낙인을 찍어 비난한 것이다.


"아버지하고는 대화가 안돼요, 항상 너무 권위적이고 강압적이거든요."


"요즘 아들 녀석이 이제 제법 자랐다고 애비 말을 안 듣는다니까. 내쫓을 수도 없고."


아들 세대, 아버지 세대들에게서 자주 듣는 말들이다. 가족들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용납하지 못하여 일어나는 단절 현상이다. 인간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이분법적 흑백 논리의 오류에 깊이 빠져 있는 매우 안타깝고 슬픈 현실이다.


자신과 다른 정치성향이나 생각, 지향점이 다른 사람을 '좌빨' '수구꼴통' '나쁜 놈' 등 한 마디 단어로 규정짓고 낙인을 찍어 비난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 다른 것은 결코 틀린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다양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 대한 모욕이고, 나아가 인간성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천박한 폭력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선거에서의 승패나 서로 다른 주장이 우열의 대상이나 차별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존중하지 못하는 국가나 사회에서는 다수가 소수를 무시하고 억압하는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나와 다른 사람을 더불어 공존해야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타도의 대상이나 적으로 보는 이분법적 흑백논리가 위험한 이유다. 일사불란은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며 결코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다양한 생각과 주장이 공존하고 존중되며 조화를 이룰 때 역사도 발전할 수 있으며 생활도 자유롭고 윤택해질 것이다.


이승철 시민리포터

출처 : 서울톡톡 http://inews.seoul.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