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어설픈 시인의 서울살이 (2) 공중도덕과 예절

운나 2013. 10. 12. 10:22

"에잇 짜증나~ 누가 화장실에서…"

어설픈 시인의 서울살이 (2) 공중도덕과 예절





시민리포터 중 시인이 있다. 스스로 '어설픈 시인'이라며 '괴테 흉내도 내보고, 소월 흉내도 내보지만 나의 시는 항상 어설프다. 불후의 명작을 쓰겠다는 욕심은 처음부터 없었고 그저, 더불어 공감하는 보통 사람들과 같이 숨 쉬고 나누는 것을 만족할 뿐'이라고 한다. 이 어설픈 시인이 서울살이를 하며 보고 느낀 삶의 다양한 모습, 역사와 전통 등을 시인 특유의 문체로 써내려 간다. 


[서울톡톡]"에잇~ 짜증 나, 담배냄새 때문에 화장실에도 못가겠네."


"어젯밤부터 누군가 화장실에서 자꾸만 담배를 피우는 것 같아요."


"그 사람 누군지 정말, 나도 담배냄새 때문에 5층 화장실까지 올라갔다니까요."


아침 일찍 화장실에 다녀온 젊은 환자가 신경질을 부리자 다른 환자 두 사람이 거들고 나섰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가 계속된 지난 연말연시에 손바닥 수술로 8일 동안 입원했던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처음 입원했을 때부터 4일 동안은 그런 일이 없었다. 그런데 5일째 되던 날 밤부터 누군가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이 병원에는 한 층에 10여개씩 모두 3개 층에 입원실이 있었다. 우리가 입원한 3층에도 2인실과 4인실, 그리고 7인실 등 9개의 병실에 40여 명의 환자들이 입원하고 있었다. 입원실 구조는 위아래 층으로 연결된 계단입구에 출입문이 설치되어 있고, 그 옆에 엘리베이터가 있다. 그 안쪽에 화장실이 있으며 앞쪽에 휴게실, 그리고 복도 양쪽으로 입원실이 마주보며 줄지어 있다.


남성용 화장실은 복도로 연결된 휴게실 쪽에 출입문이 있고 건물 외벽에 작은 창문이 있을 뿐이었다. 천장에 작은 환기구가 있었지만 기능은 신통찮은 것 같았다. 그래서 건물구조상 화장실 안에서 담배를 피우면 입원실이 있는 휴게실 쪽과 외부 창문으로 연기가 빠져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데 날씨가 너무 추워서 외벽 창문이 닫혀 있으니 담배연기는 고스란히 휴게실과 복도를 통하여 입원실로 유입될 수밖에 없었다.


화장실에는 입구출입문과 내부 벽면, 그리고 대변기 출입문에도 '금연', '흡연금지'라는 빨간 색으로 쓴 커다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그런데 이런 병원 입원실 공용화장실에서 누군가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주인공이 하필이면 내게 딱 걸렸다. 아침을 먹은 후 화장실을 찾았는데 지독한 담배냄새와 함께 대변기가 있는 한 칸에서 연기가 부옇게 피어오르고 있는 게 아닌가. 소변기 앞으로 다가서며 물어보았다.



"지금 화장실 안에 계신 분, 담배 피우시는 중입니까?"


병원 입원실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다니, 이런 얌체 같은 사람이 있나, 다른 환자들이 싫어하는 걸 모를 리 없을 텐데, 순간적으로 감정이 격해졌지만 마음을 진정하며 정중하게 물었다.


"네~"


당당한 건지 멋쩍어 하는 건지, 즉각 응답이 왔다. 그렇다고 대답하는 짧은 한마디 목소리만으로는 짐작이 가지 않았다. 다시 물었다.


"혹시 병원입원실 화장실이 금연구역이라는 걸 모르셨습니까? 여기저기 금연구역라고 써 붙여 있는데요. 다른 환자들이 얼마나 불편해 하는 지 아십니까?"


순간 이번에는 대답 대신 쏴아~ 대변기 물 내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환자복을 입은 사람이 당황한 듯 흘끔 나를 살펴보고 잽싸게 화장실 밖으로 빠져 나갔다. 상대방이 민망해 할까봐 돌아보진 않았지만 전면의 거울을 통해 그의 당황해 하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입원실로 돌아와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주며 '이제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러자 다른 환자들이 "좀 따끔하게 혼내주지 그랬느냐"며 "그렇게 좋은 말로 말해서 그 나쁜 버릇이 고쳐지겠느냐"고 한 마디씩 한다.


"본래 그렇게 매너가 나쁜 사람은 쉽게 고쳐지지 않거든요."


"매너 정도가 아니라 에티켓을 모르는 사람이지요. 병원 입원실 공용화장실에서 그렇게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몇 살이나 먹은 사람인지 모르지만 도무지 예절을 모르는 사람같네요."


30대 초반의 젊은 환자들이 매너와 에티켓을 들고 나오자 60대 후반의 노인은 예절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거든다. 세 사람의 말은 모두 달랐지만 의미는 거의 비슷했다. 매너(manner)라는 말은 'Manuarius'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Manus'와 'Arius'라는 말의 합성어로서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독특한 습관, 몸가짐을 이르는 말이다.


에티켓(etiquette)은 고대 프랑스어의 동사 'estiquer'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 어원은 베르사이유 궁전에 들어갈 때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티켓(ticket)에 기원을 둔다는 설이다. 그 티켓에는 궁전 내에서 유의할 사항과 함께 화단의 입간판에 붙여 있는 '꽃밭을 해치지 마시오'라는 말을 상징하는 'estiquer'(붙이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우리말의 '예절'은 위의 매너와 에티켓을 모두 아우르는 뜻으로 '예의에 관한 모든 절차나 질서'를 뜻한다, 개인은 물론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공동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서로 유의하고 지켜야 할 도덕과 공중질서는 이제 우리사회에서도 불문율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표현은 달라도 어느 나라에서나 꼭 지켜야할 매너이며, 에티켓이고 예절인 것이다.


그날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내게 딱 걸린 그 사람, 비록 그가 공중질서를 지키지 않았지만, 그를 배려하여 좋은 말로 일깨워주고, 얼굴을 마주 보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 후로 내가 퇴원할 때까지 화장실에서 담배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이승철 시민리포터

출처 : 서울톡톡 http://inews.seoul.go.kr